[취재파일] 페트병 200개 넣어야 2,000원…12억은 왜 통장에 못 갔나
지난달 중순, 서울 양천구 신월7동의 무인회수 시설. 주민들이 봉지를 하나씩 들고 서 있다. 화면에 전화번호를 누르고, 투명 페트병을 한 개씩 투입구에 밀어 넣는다.
핵심 요약
- 전국 무인회수기 2,057건에서 현금으로 지급되지 못한 포인트가 12억 1,756만 원으로 집계됐다
- 2,000포인트를 모아야 계좌 이체가 가능해 페트병 200개를 모아야 2,000원을 받는 구조다
- 전주시는 운영업체 중단으로 시민 470여 명의 약 500만 원 포인트를 돌려받지 못했다
전국 무인 페트병 회수기에서 이용자에게 지급된 포인트 가운데 12억 1,756만 원이 현금으로 지급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이학영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받은 운영 현황 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다.
자료에 적힌 설치 건수는 2,057건이며, 구입비는 확인된 것만 443억 6,290만 원으로 대부분 지방비로 마련됐다. 2017년 경북 의성의 한 대로 시작한 기계는 현재 2천 곳을 넘었고, 절반 이상이 최근 3년 사이에 설치됐다.
현금 전환의 두 가지 문턱
현금으로 가지 못한 이유는 우선 2,000포인트 기준이다. 페트병 200개를 모아야 본인 명의 계좌로 옮길 수 있고, 업체에 따라 3,000포인트를 채워야 하는 곳도 있다. 이 기준은 2017년 첫 기계가 설치될 때 만들어져 2019년 약관에 들어갔으며, 처음에는 은행 이체 수수료 때문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하루 투입 개수 제한이다. 한 사람이 300개씩 넣어 기계를 독점한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지자체가 상한선을 요청했고, 지금은 대부분 30~50개 사이로 묶여 있다. 어르신들이 80개를 가져와 30개만 넣는 경우가 생기면서 가족 전화번호로 넣는 사례가 늘었고, 이렇게 쌓인 포인트는 본인 명의가 아니라 찾을 수 없다.
저희는 사실 포인트를 지금 채무로 인식하고 있거든요.
— 제조사 관계자
업체 중단과 해외 사례
전주시는 7억 4천만 원을 들여 41대를 설치하고 운영만 대행업체에 맡겼으나, 지난해 10월 중순 업체가 운영 중단을 통보했다. 페트병 값이 ㎏당 1,000원에서 떨어지고 원료 품질까지 나빠진 데다 운영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 470여 명이 못 받은 포인트는 약 500만 원으로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
독일의 판트 제도는 페트병 한 개를 넣어도 영수증이 나와 마트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노르웨이 운영사는 돌려줄 보증금을 충당금으로 쌓아두고, 미국 일부 주는 돌아오지 않은 보증금의 귀속처를 법으로 정해뒀다. 국내 무인회수기 포인트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남은 포인트 파악도 제각각
2,057건 가운데 남은 포인트를 숫자로 답한 곳은 1,104건에 그쳤다. 나머지 953건은 산출 불가나 확인 불가, 자료 없음으로 적혔거나 비워져 있었고, 고장 신고 건수를 적지 못한 곳도 647건이었다. 기계를 산 쪽은 지자체지만 시민에게 나간 돈과 남은 돈은 업체 서버에만 있다.
제조사 입장
제조사는 포인트를 채무로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현실과의 괴리가 있다고 밝혔다. 포인트가 대금 지급 수단이 아니라서 예치금이나 보증보험을 들지 않아도 된다는 법무 검토 결과를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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